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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육왕사(阿育王寺)

2007-09-25 11:37:01

 

 

 

 

 

 

 

 

 

아육왕사는 인현동북쪽의 무(鄮)산기슭에 있는데 천동사와 5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닝보시중심과 20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유명한 사찰이다. 아육왕사는 중국불교사와 중일 문화교류사상에서 중요한 지위를 갖고 있는데 특히 “석가모니진선사리”보탑은 해내 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기원전 486년 석가모니 원적후 제자들이 불조 유체를 화장할 때 8만4천여개의 견고한 채색 진주알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사리이다. 후에 아육왕이 인도 공작왕조 국왕을 된후 전쟁을 발동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로 하여 그는 양심의 가책을 깊이 받았으며 이 죄를 미봉하려고 하였다. 그는 귀신에게 홀리듯 하루에 보탑 8만4천개를 지어서 굴탑사리를 거기에 모셨다.
 
서진(기원278년)의 혜달스님은 신고를 마다하지 않고 석가모니 진선사리가 있는 보탑을 찾아 떠났다. 그가 닝보 무산우석에 도착했을 때 쩌러쩌렁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성심성의로 기도를 했는데 삼박 삼일 동안 경문을 읽었다. 그러자 하나의 보탑이 지하에서부터 솟아났는데 그 안에 불탑두골사리가 있었다. 사리가 다시 나타나며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 아육왕사도 이 불가의 진귀한 보물로 인해 중국 역대 제왕의 특수한 대우도 받았다.

남북조(기원 420-589년) 때 성심성의(誠心誠意)로 불교를 믿는 효정제는 기원 539년에 명을 내려 병사 3000명을 파견하여 사리보탑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기원845년 당무종 리영이 명을 내려 불교를 금지시켰으며 아육왕사의 사리도 몰수 하였다. 기원 850년에 와서 아육왕사는 다시 불교사리를 맞이해 왔는데 이 때에 8천명이 넘는 스님들이 임안당에서 거대한 환영행사를 진해 하였다. 남송 순희3년(기원1175년) 사리는 궁전에서 봉양하게 되였다.

치원13년(기원1176년) 원세조 박이후빌열 명을 내려 사리를 국도—대두(지금의 북경)에 모시게 되였다. 그는 직접 와서 경의의 마음을 표시했고 또 스님 십여만을 모집하고 열여섯 개의 도장을 마련하여 사리를 위해 축복하며 사리를 아육왕사에 도 보냈다. 몇 달 후 후빌열은 또 명을 내려 사리가 지나가는 각 현 정부는 존경의 마음을 나타내며 사리를 위를 길을 내주라고 하였다. 이는 불탑사리가 받은 최고의 예우(禮遇)이다.
 
아육왕사는 건축, 원림, 고적, 명승으로 유명하다. 무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규모가 방대하고 부지면적이 8만여 km2이고 건축면적만 2만4쳔여 km2이다. 절 앞에는 옥산이라고 하는 있는데 산의 모양이 마치 사면에서 절로 날아오는 봉황과 같다.  “천동산은 아홉 마리의 용이 진주를 갖고 놀던 곳이고, 아육왕사는은 다섯 봉황이 햇빛을 맞는 곳이다”라는 말도 있다.

◆추천노선:

◆산문---만공지---천왕전---머커전---법당과장경루---불적암---상탑과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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